저는 운전경력이 15년 되는 자가 운전자입니다. 집이 수원이고 직장은 강남구 신사동이므로 매일 자가용을 끌고 출퇴근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무사고는 물론이고 주차위반 두 번을 빼면 딱지 한 번 떼지 않은 자칭 타칭 모범운전자^^ 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직장과 집 사이를 빼면 운전에 공포감을 느낍니다. 다름 아닌 길치거든요. 길치도 보통 수준을 넘어서 그냥 길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을 가본 곳도 다음에 다시 가려면 한 번에 찾아 가는 법이 없어요. 그래서 늘 제 차에는 지도가 놓여져 있고 출발 전에 지도를 확인한 다음 머리 속으로 모의 주행을 해보고 지도 책을 펼쳐놓은 상태에서 지도상에 나타난 큰 길만을 따라서 운전을 해왔습니다. 문제는 교통 체계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혹시라도 지도와는 다르게 가려던 길에 좌회전 금지가 나온다 던지 하면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었지요. 제 평생에 저처럼 심각한 수준은 딱 한 번 밖에 못 봤습니다. -,.-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저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능을 믿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다가 얼마 전에 미국에 출장 갔을 때 Hertz에서 차를 빌렸는데 Never Lost라고 차량용 네비게이션 옵션이 있는 차가 있길래 별생각 없이 빌렸습니다. 내비게이터는 PDA크기의 자그마한 물건이었는데 안테나는 꽤 큼지막한 것이 트렁크 쪽에 달려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역시 지도를 옆에 두고 쩔쩔 매면서 다녔을 것이 이 물건 덕분에 정말 아주 편안하게 돌아다니면서 출장을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는 내비게이터를 동경하게 되었죠. “이건 진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신의 선물(?)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래서 와이프에게 “이거 살 거다”라고 했더니 두 말 없이 사라더군요. 평소 저를 장애인 취급하던 터라……
PDA는 iPAQ 3850을 이미 가지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PDA용으로 고르던 중 소프트웨어는 아이나비 641 256M를, 안테나는 Navman을 결정했습니다. 평소 주변에 내비게이터를 쓰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웹을 돌아다니며 사용평등을 살펴보고 결정했는데 결론적으로 실수였습니다. 나브맨은 평이 아주 나빴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저분한 케이블을 설치하는 게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브맨을 결정했습니다. “설마 못 쓸 물건을 팔겠냐?”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말이죠. 처음에는 나브맨으로도 잘 다녔습니다. 출퇴근 길이야 이 놈을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집과 직장 사이를 빼고는 늘 이 놈을 켜놓고 다녔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다닐 때보다는 좋아졌지요. 일단 지도를 옆에 펴놓고 다니는 게 얼마나 불편한 지는 제 수준의 인간이 아니면 잘 모르시겠죠?
아무튼 도움이 되기는 되는 데 좀 지나고 나니까 불만이 생기데요. 무엇보다도 먼저 이 놈을 키고 위성을 잡는 데까지 시간이 장난이 아니에요. 이거 문제죠. 저 같은 수준의 인간은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가면 당장 어디로 갈 지가 헤 깔리는데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위성이 안 잡히면 그냥 집어서 부셔버리고 싶어지죠. 이 놈이 가끔은 한 30분이 지나도 위성 그림자도 못 잡을 때가 있어요. 아마 콜드 스타트를 하는 모양인데…… 아무튼 그럴 때면 무척 화가 나죠. 하지만 그럴 때는 드물고 대개 한 5분은 지나야 위성이 잡히고 갈 길을 라우팅해 줍니다.
터널이나 좀 긴 지하도를 지나면 그 다음에는 감감해질 때도 많아요. 경험상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이럴 때는 소프트리셋을 하면 잡아주는 느낌이 들어 운전 중에 PDA 리셋하고, 아이나비 실행하고, 위성 잡히기 기다리고…… 이거 위험하죠? 위험은 위험이고 위성이 다시 등장하기 전까지 느끼는 불안감이 마치 지도상에서 길을 놓쳤을 때 이상입니다.
그 다음으로 진짜 중요한 건 결정적인 순간에 위성을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고속도로나 차선이 넓은 대로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결정적으로 복잡한 시내에 들어가거나 건물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사라지죠. 그러니깐 이게 마무리가 안되는거죠. 사실, 대로에서보다 복잡한 도로나 이면도로 등에서 더 중요한 건 데 이게 그런 중요한 순간에 마무리를 못해주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매일 매일 기복이 있기는 한데(날씨와는 별로 관계가 없더군요. 그냥 같은 길을 가도 어떤 날은 그런대로 괜찮고 어떤 날은 아주 헤메고 그래요.) 국도에서도 위성을 잘 놓칩니다.
결국은 이걸 팔아버리고 그냥 로얄텍 수신기를 살까보다 하고 중고시장에 내놔 봤습니다만…… 쩝. 안 사가시데 들…… 생 돈 들여 수신기 다시 사기는 아깝고, 불만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 이거 놔두고 로얄텍 수신기랑 CF어뎁터를 살까 하고 망설이던 중 나브맨 2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놈은 수신성능이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상당히 좋아졌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어찌나 배가 아프던지…… 그러던 중 마침 이 놈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있어서 당연히 테스트해보겠다고 자원을 했습니다. 물건을 받아서 이전 드라이버 삭제하고 동봉된 CD에서 3.1.6 드라이버를 설치한 다음 사무실에서 GPSInfo를 실행해 봤습니다. 어라? 잠시 후 위성이 잡히네요? 거참 신기하데…… 그래서 아이나비를 실행하고 위성이 잡히나 보았습니다. 음…… 잡히긴 하는 데 노란색으로 활성화는 안 되는군요. 그 상태에서 창가로 가지고 갔습니다. 잠시 후…… 헐 이건 기적이야…… 나브맨이 실내에서 위성을 잡다니……
그 날부터 3일간 나브맨2를 달고 다녀봤습니다. 제가 PDA가 한대밖에 없어서 정량적인 비교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감으로 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우선 초기에 위성을 잡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와서 첫 신호나 두번째 신호등에 걸릴 때쯤 되면 위성을 잡습니다. 예전보다는 훨씬 낳아진 거죠.
이면 도로나 복잡한 시내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위성을 잃어버리는 일도 많이 줄었습니다. 아직도 그러는 경우는 있지만 어차피 GPS신호가 사방이 가려진 곳에서는 잘 안 잡히는 것이 당연하니 그냥 이해해줄 만한 정도가 되는 걸까요? 아직도 갑자기 위성이 사라지거나 터널이나 긴 지하도를 통과한 다음에는 위성을 잡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다시 말해 이만하면 사용상 거의 지장이 없을 수준은 되었으나 제 성질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나브맨2와 이전 나브맨의 외관상의 차이는 왼쪽에 외장 안테나를 연결할 수 있는 플러그가 있다는 것입니다. 외장 안테나 값이 쇼핑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대략 3만5천원 수준이군요. 이걸 사서 달면 어떻게 되나 또 궁금해 집니다. 파는 곳이 많지가 않아서 어렵사리 외장 안테나를 사서 달았습니다. 나브맨2가 제 물건도 아닌데 말이죠(도무지 궁금한 걸 못 참아서 …… -,.-). 실내에서 먼저 테스트해봤습니다. 안테나를 꽂고 외장 안테나를 창문 앞에 두었습니다. 참고로 제 사무실은 빌딩이라 열리는 창문이 없고 그냥 벽이 두꺼운 통 유리창입니다. 그 상태로 창문 앞에 안테나를 두었더니 마치 제 차 안에서 신호를 잡는 것처럼 위성들이 좍 잡힙니다. 아이나비에서 보니 신호 레벨이 양호 쪽으로 치우칠 정도로 잡힙니다. 진짜는 차를 몰고 나가봐야죠. 그것을 달고 또 한 3일 다녀봤습니다.
보조 안테나를 뒷 유리창 스피커 근처에 두고 다녔습니다. 결과는 한 마디로 감동적인데,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어 도로로 나오면 신호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넓은 도로에서는 거의 항상 신호가 풀이구요. 복잡한 이면도로나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대개 양호 쪽 입니다. 신호 꺼지는 일은 지하도나 고가도로 바로 밑이 아니면 실질적으로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하도나 터널을 지나고 난 다음에는 보통 5~10초 내에 다시 신호가 들어옵니다. 혹시 나브맨2를 사셔서 차량용으로 사용하실 계획이시라면 반드시 보조 안테나를 함께 사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지금까지 나브맨과 나브맨2를 사용해본 결과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되겠습니다.
| 나브맨 | 나브맨2 | 나브맨2+보조 안테나 | | 초기 위성 감지 | 출발한 후 위성 잡힐 때까지 5분정도 불안에 떨어야 함 | 도로로 나와서 한 두 블록 지나면 위성 잡음. 1~2분 정도면 수신 | 시동 걸고 도로에 나서면 어느새 위성이 잡혀 있음 | | 복잡한 도로/이면도로/아파트 단지 내 | 수시로 위성이 사라짐 결정적일 때 도움이 안됨 | 복잡한 도로에서도 대체적으로 문제 없음 | 신경 끄고 살아도 됨^^ | | 터널 / 지하도 이후 |
어쨌든 불안 | 불편 없음 | 나오자 마자… | | 결론 | 사지 마세요. | 사셔도 괜찮아요. | 강력히 추천 |
보조 안테나를 사용하면 케이블이 하나 더 생겨서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요. 제가 나브맨을 산 이유가 케이블이 어지럽게 보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니까 말이죠. 정 케이블이 신경 쓰이시면 나브맨2가 좋겠지만, 위성이 나왔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싫다면 케이블 한 가닥을 희생하더라도 보조 안테나를 설치하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에는 뒷 유리창 밑에 두고 좌석 옆으로 돌려서 바닥 매트 밑으로 케이블을 감춘 다음 나선형인 전원 케이블 속으로 집어 넣어 정리하니 그런대로 깔끔하게 됩니다.
제가 테스트에 사용한 나브맨2가 제 것이 아니라서 돌려주게 되면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존 나브맨에 보조 안테나를 붙여보는 거죠. 혹시 이렇게 해보신 분이 아직 없는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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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btkim@wizstone.com.nosp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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