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돈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으로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원금을 날리게 되자 나오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사태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자신들의 투자손실을 국내 금융사들을 통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떠넘긴 형국이다. ‘수익 과실’ 따먹기가 아닌 ‘손실 폭탄’ 돌리기 게임에서 국내 투자자들이 피해자가 된 것이다.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와 영·미 이자율스와프(CMS) 금리와 연계된 파생상품을 구상한 것은 JP모건, 메릴린치, BNP파리바 같은 해외 IB들이다. 독일 국채 등에 투자하다가 금리변동으로 손실을 입게 될 경우 이를 메울 수단을 확보하는 차원이다. 업계에서는 독일을 비롯한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오르는 쪽에 투자했던 해외 IB들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손실을 헤징(회피)할 수 있는 이 같은 파생상품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제안을 받은 IBK투자, NH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은 관련 파생결합증권(DLS)을 발행했다. DLS는 금리, 환율, 원자재, 신용 등 기초자산의 ‘가격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이다. 이 DLS를 수익증권으로 만든 게 파생결합펀드(DLF)다. 증권은 발행 증권사에서만 판매가 가능하지만, 펀드의 경우 판매채널을 다양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B자산, 교보악사를 비롯한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DLF를 발행했다.
은행은 DLF를 금융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주 통로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독일 국채와 영·미 CMS 금리와 관련된 파생상품 전체 판매액 8224억원 가운데 99.1%(8150억원)가 은행에서 판매됐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해외 IB들의 시장 리스크가 해당 파생상품을 구입한 투자자들에게 이동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번 파생상품에 투자한 개인은 3654명으로 투자금액은 7326억원이고 법인은 188곳, 투자금액은 898억원이다.
이 중 독일 금리 DLF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마이너스 0.25%일 경우 6개월 만기에 연 4%에 해당하는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저금리 시대에 솔깃한 수익률이다. 하지만 금리가 이 기준점에서 0.01% 떨어질 때마다 원금의 2.5%가 손실 나는 구조다. 지난 18일 독일 국채 금리는 장중 마이너스 0.72%까지 떨어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다.
이 과정에서 해외 IB들은 금리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헤징)할 수 있었다. 국내 금융사들은 수수료 이익을 얻었다. DLS를 발행한 증권사의 수익은 발행금액의 약 1%, DLF를 만든 자산운용사의 수익은 총판매액의 0.175%(연간)이고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의 수익도 판매액의 1~1.5% 수준이다. 이에 따라 수수료에 눈이 멀어 국내 투자자들을 해외 IB들과의 ‘제로섬’ 게임으로 이끌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독일 국채 금리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지적도 있다.
저금리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투자처로 DLS를 비롯한 파생상품 수요가 늘어난 것도 이번 사태의 이유로 꼽힌다. KB증권에 따르면 DLS 발행금액은 2008년 1326억원에서 2018년 2조925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리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분데스방크(독일중앙은행)는 모두 믿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 국채는 안전 투자자산으로 여겨져왔으나, 이번 사안에서 보듯이 과거 데이터를 맹신하는 투자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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