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http://www.todaysppc.com/mbbs/view.php?id=free&page=2&no=463450&ct=20210811_4769920000
왜냐하면, 제가 만두를 참 좋아하거든요. 힘들면 가족들 몰래 칠보산 아래 있는 만둣집 가서 김치만두 한 사발 만두사리 추가해서 먹고 배 두드리며 돌아오고 그럽니다. 어린 시절에 겨울이면 온 가족 모여 앉아서 만두 빚는 게 큰 즐거움이었잖아요. 한꺼번에 열몇 개씩도 먹어치우곤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일종의 소울푸드랄까요.
그런데다가, 오늘은 아침에 감자전 몇 쪽, 점심에 편의점표 납작 햄버거 한 개로 때운 날이라 속이 어쨰 이리 허한지... 뭔가 뜨끈한 게 눈앞에 아른아른하더란 말입니다. 만두...만두...만둣국... 아, 입안에 침 고이는 걸 막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지금은 방학 중... 집에 있어도 되는 날인데 학교에서 종일 일을 하기는 했지만, 뭐 어때요, 방학인데. 한 시간 일찍 나온다고 문제될 게 하나도 없는 날... 아이 씐나... 게다가 그 동네는 한 삼십 년 전까지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했던, 젊음의 한 자락을 불태웠던 동네라...
오후 네 시 반쯤 매산동에 도착했습니다. 식당 있는 골묵은 구길이라고 부르는 길인데, 원래 그 길이 역전에서 팔달문으로 가는 길이었다지요. 그 길은 주차가 너무너무 어려운 길입니다. 아예 아카데미극장 입구 근처에 있는 유료주차장에 대고 가는 게 마음 편합니다.
식당 발견하는 건 간단합니다. 딱 그 자리입니다. 문 열고 들어 가니 남자 손님 한 분이 콩국수를 드시고 계시는군요. 오, 척 봐도 국물 진한 게 보입니다. 운동하다 온 것 같은 그 남자분이 혹시 투피 회원이실까 눈치 보면서 자리에 앉아 만둣국 한 그릇을 주문합니다. 머피님 안 계시네요.
어? 이거 안 시켰는데요??? 콩나물 보리밥이 먼저 나옵니다. 오호, 만둣국에도 이게 먼저 나오는군요! 이거 이러면 미리 배가 부를 텐데... 라고 생각해 보야 아무짝에도 소용 없습니다. 보리밥이 맛있거든요. 눈치 볼 것 없이 고추장에 비벼서 싹 비워 줍니다. 밋있어요... ^^
보리밥을 쩝쩝거리고 있는데 만둣국이 나옵니다. 야아, 이거 국물 뽀얀 것 보십시오. 냄새가 끝내 줍니다. 국물부터 한 술 맛을 봅니다. 그렇죠, 이 맛이죠! 입꼬리가 씨익 올라 갑니다. 제가 이 댁 칼국수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칼국수도 맛있을 겁니다. 틀림 없지요.
만두 보시겠습니다. 만두피 두꺼운 것 보이시지요? 만두 테두리가 넓직한 것도 보이시지요? 요거, 손만두로군요!
만둣소 보시지요. 고기, 두부, 부추, 당면!!! 아, 요거 제대롭니다! 저는 고기만두보다 김치만두를 더 좋아하지만, 유명하다는 만둣집에서 쓸데없이 맵게만 만든 김치만두에 실망한 일이 많습니다. 그런 김치만두보다는 요런 고기만두가 훨씬 낫습니다. 아, 맛잇어요! 요거 제맛이에요!
예, 싹 비웠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비우는 게 예의죠! 저희 어머니는 이북 분이라 해마다 만두를 빚으셨는데, 몸 약해지신 뒤로 벌써 십여 년 만두를 빚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만두 맛집을 여러 곳 찾아갔는데, 대개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은 뿌듯하네요. 참 좋습니다. 이 댁 만두는 그 옛 맛에, 또는 집 손만두 맛에 가장 근접한 맛입니다. 왕만두나 매운 만두, 공장제 만두에 뭔가 아쉬움을 느끼셨던 분이라면, 틀림없이 저처럼 마음 뿌듯함을 느끼실 겁니다.
먹다 보니 머피님 오셔서 서빙하시네요. 엄훠나, 미남이시네... ^^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인 척하고 계산하고 나오며 보니 테이블마다 혼자 온 중년 남자들로 꽉 찼네요. 다들 투피님들이신가? 알 게 뭡니까. 저는 만둣국 한 그릇에 마음 뿌듯하고 뱃속 뿌듯해져 돌아옵니다. 푸근한 저녁입니다. 힘든 시절, 만둣국 한 그릇이 위로가 되어 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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