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에 집과 회사에서 트랙볼을 들였습니다. 켄싱턴 오빗이라는 모델입니다. MS 내추럴 키보드를 쓰는데, 이 제품 마우스 내구성이 완전 개판이라서요. 우레탄 뜯어지는건 예사고, 마우스 버튼 동작이 좀 쓰다 보면 엉망이 됩니다. 집과 회사 모두요. 로지텍은 버튼 교체라도 하겠는데, 이녀석은 교체할 부품도 없어요. 인터넷 보면 버튼을 분해해서 닦으라는둥 하는데 다 소용없습니다. 근데 몇달 전에 알게 된건데, 혹시나 하고 버튼 분해 후에 접점부활제를 뿌렸더니 살아나네요. 암튼, 마우스도 그렇게 살렸습니다. 근데 이 얘기 하려는건 아니고.....
이 트랙볼이, 집에서 사용하는 녀석은 잘 동작하는데, 회사에서 쓰는 녀석이 마우스 커서가 이동하다가 멈첫멈칫합니다. 처음에는 오래 전 볼마우스 쓰던 기억으로 볼을 뽑아서 롤러를 청소했습니다. 아무런 소용이 없네요. 레이저 센서 문제도 아닌 듯 합니다. 안쪽에 먼지가 낀건가 싶어 먼지제거제로 불어도 보고 별 짓을 다 하면서 어쩌다 보니 1년이 가버립니다. 어차피 구매 페이지에 7일 이내에만 환불이 된다는 수입상이라서 수리는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구요.
그러다가 어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롤러가 문제라면 볼의 회전 자체에 문제가 있을텐데 그러면 롤러의 문제는 아니고, 레이저 센서의 문제도 아니라면, 볼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 볼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켄싱턴 오빗의 볼은 펄이 들어간 듯한 파란색에 유광입니다. 이걸 굴려가면서 자세히 보니 한쪽에 핀 끝만한 검은 점이 보입니다. 이상하다 싶어 센서에 여기를 맞춰서 굴려봅니다. 센서는 안쪽에 있으니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커서가 멈칫하는 현상이 그 부근에서 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듭니다. 아.... 어쩌면 여기쯤에서 볼이 레이저를 반사하지 못하는걸지도 모르겠다라는 의심이 들어요.
그래서 여기 이 점의 반사를 어떻게 회복해 줄까 하다가, 어이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랍에 있는 검은색 마커를 거기 칠해 줬습니다. 이걸 무슨 수리라고... 쯧. 스스로 한심해하면서 그 부분만 마커를 칠한 후 볼을 끼워줍니다. 결과는........
될리가 없지요. 오히려 마커 칠한 부분이 트랙볼 안쪽의 볼 롤링을 지지해 주는 미세한 롤러에 턱턱 걸리면서 볼이 굴러가는 느낌만 더 안좋아집니다. 에라, 망쳤네 싶은 생각에 볼을 다시 뽑아 물티슈로 박박 닦았습니다. 검은 자국이 좀 남아 있긴 한데, 귀찮아서 그냥 퇴근......
그리고 오늘 아침에 아무 생각없이 트랙볼을 굴리는데, 어라? 멈칫하는 현상이 없어졌네요????? 밤새 박박 닦다가 남은 마커 자국은 수성 마커가 마르면서 트랙볼 안쪽의 롤러에 걸리는 촉감도 없어졌고, 약간 남아 있던 마커가 볼의 반사를 어느 정도 생성시켜주는 모양입니다. 멈칫하는 현상도 없고 볼도 부드럽게 굴러가요.
살짝 어이가 없기도 하고, 수성 마커라서 쓰다 보면 언젠가는 깨끗하게 지워지겠지만, 일단 오늘은 제대로 굴러가는 트랙볼을 잘 써 보려고 합니다. 이상하고 신기하네요.
이따위를 수리라고 하긴 뭣한데, 일단은 고쳐졌으니(?) 수리기로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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