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폼이 좋아야.

아래 양예빈 선수의 달음질 하는 폼을 보니 역시 멋있네요.

그야말로 역주하는 폼이 남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폼’이라고 하니 갑자기 소싯적 생각이 파~악...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고교얄개’인지 뭔지 영화 좀 보겠다고

속칭 땡땡이를 치고 ‘같은 날 죽기로 혈맹’을 맺은 동지들과 함께

단성사인지 피카드리 극장인지 하여간 둘 중에 하나일 것임.

은밀히 움직이던 5개의 그림자는 어느 순간 멈추었습니다.

전 년도 달력을 안 쪽의 흰색이 보이도록 뒤집어서 커버를 한 영어 책 속에

며칠 전 부터 미리 구해 둔 표를 꺼내는 친구의 손길이 떨리고 있었죠.

그 이유는 우리가 선 이 곳이 범상치 않은 곳으로

느닷없이 출몰하는 학생주임 선생님이나 퇴학당한 학교 선배,

그리고 인근 경쟁학교의 노는 애들과의 조우가 빈번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연하자면 이 친구 집은 동네의 오거리에서 구멍가게를 하는데

일명 ‘5거리상’이라고 불리는 가게의 큰 자재였던 셈이죠.

요는 이 가게 앞은 요즘말로 하자면 서울의 명동거리라고 할 정도였고

당연히 꼼뿌타와 인터네또가 없는 시절이라 영화 포스터가 항상 경쟁적으로 걸리는

요처 중에 요처였던 것입니다.

풍문에 의하면 돌아가신 도금봉 선생님이 ‘포스터 좀 붙이게 해 주십시오’라고

읍소를 했다나 뭐라나...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아줌마~, 영화 포스터 좀 붙이고 표 3장 드릴께’ 등등

긴또깡 배추 겉절이 하는 식의 담판이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영화 포스터를 붙일 때면

항상 벌어지던 곳이었죠.

엄마가 잠깐 나간 사이에 이 친구가 그들과 협상을 한 모양입니다.

‘5장은 줘야...’

우리 까마귀파(해가 져도 우리는 논다는 의미에서 까마귀를 조직의 상징으로 삼음)에서

가장 공부도 잘하고 피부도 하얀 이 친구가 이젠 이런 세기의 담판을 척척해 내는

수준에 이른 것도 저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했다고 보셔야 합니다.

더욱 경악스러웠던 것은 책갈피처럼 꽂힌 표가 자그마치 7장이었다는 것.

허어, 7장이라니!

장차 나라에 큰 재목이 될 것임을 직감하였고

작금 일본과의 외교전에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허허)

< 오늘은 이 친구가 주인공이 아니기에 색인만 해두고. [Save as..] >

후일담이지만 표를 넘겨받은 제 손도 떨렸다고 하더군요.

저는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영화표에 놀란 것이 아니었지요

조계사 뒷골목으로 인사동 골목으로 돌고 돌아서 당도한 이 곳에는

숨찬 호흡을 가다듬으며 표를 움켜쥐는 우리를 노려보는 시선이 있었고

그 작았던 점은 점점 커지며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점이 어느 정도 커지자 “뛰어”라는 소리와 함께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합니다.

무슨 담대함인지?

죽어라 뛰는 이 순간에도 내가 제일 뒤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더군요.

가빠지는 숨소리와 벅차게 뛰는 이 고동소리에도 앞서가는 4개의 머리통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올망졸망 리드미컬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던 그 머리통들의 움직임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원래 달음질은 줄 창 소문난 사람입니다만 담대함인지? 비극인지?

오늘은 이 비 좁은 골목을 뛰는 인간 6명 중 제가 5등의 위치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담대함’ 나는 잡혀도 너희들을 잡히게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제가 미려하게 포장한 단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뒤를 쫒던 이의 정체는 바로 다음날 학교에서 밝혀졌지요.

‘학생주임’ 선생님, 그것도 바로 담임선생님이었다는 것.

풍문여고를 지나 현재 헌법재판소가 있는 곳까지 달려서야

다시 작아지는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행의 줄줄이 놀이도 점의 크기에 비례하여 가속도에 영향을 주는 상수였답니다.

점이 커지면 줄줄이의 속도가 증가하고

점이 작아지면 줄줄이의 속도가 내려가는

이 웃지 못 할 2차 방정식은 리미트(무한대)라는 함수를 구하기도 전에

점이 사라지며 상황을 종료하게 되지요.

‘폼생폼사’ 저는 이 날 이후 이 말을 신봉하게 됩니다.

‘앞으로 나~아~아~왔!’

어제의 세미마라톤 사건도 있고 하여

학업에 몰두하려던 저의 학구열에 찬물을 끼얹는 일호의 외침이 교실을 가릅니다.

기막히게 어제의 순번대로 거무튀튀한 칠판 앞에 정렬했습니다.

무슨 운명이라고 순번까지 그대로 인지?

안 그래도 그 큰 눈알은 이미 사천왕상의 눈알을 압도할 지경이었고

빠질 경우 손을 뻗어 받아 드려야겠다는 은사님에 대한 예우까지 머리에 맴돌고 있었지요.

이미 귀싸대기 십 여대가 훑고 지나간 지금 멍한 머릿속에는 의문이 커져 가고 있었죠.

‘세상에 어찌 우리인줄 알았을까?’,

‘우리 반 아이야 그렇다 해도 남의 반 아이들까지 다 잡아들이다니?’

신출귀몰한 담임선생님의 수사력에도 박수를 쳐 드리고 싶지만

자꾸 커져가는 그 의구심은 얼마 가지도 못하여 맥없이 풀리고 말았죠.

‘야 임마!, 우리 학교에서 너처럼 뛰는 놈이 또 있겠어!’

‘내가 숨이 차서 조금만 뛰다가 이 정도면 혼이 좀 났겠지 싶어서

그만 쫒아 가려고 했는데 깐죽깐죽 뛰는 너 때문에 풍문여고까지 쫒아 간겨’

‘이 짜씩이 선생을 아주 놀려 어~엉’

이 말씀을 하시며 악을 쓰셨고 그 힘에 비례하여 저의 왼쪽 뺨은 더욱 홍조가 되었답니다.

달리기는 잘 하는 편이지만

항상 뒤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너는 왜 뛰는 폼이 깐죽 깐죽이며 뛰냐?’

이런 소리를 많이 하더군요.

‘완전범죄’ 가능하지요.

허나 폼을 고쳐야 합니다.

이 날 이후 ‘폼생폼사’는 저의 생활신조.

저 이래 봐도 학교 다닐 때 반장, 부 반장, 분단장은 못 해 봤어도

[ 부 분단장 ] 은 해 본 사람입니다.

돌아가신 양친께서는 제가 부 분단장 되었다니

얼마나 흡족해 하시던지...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발췌